-
[ 목차 ]
코로나가 끝난 직후, 밀려 있던 숙제를 하듯 일본 여행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매번 여행을 떠날 때마다 ‘이번이 마지막이겠지’, ‘정말 마지막으로 가보자’라고 다짐했지만, 그렇게 3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라도 늦기 전에, 그동안 다녀왔던 여행들을 하나씩 기록해보려 합니다.
하나하나 특별했던 여행들이 쌓이다 보니, 어느새 연속적인 이야기처럼 느껴집니다.
어제 있었던 일조차 쉽게 잊어버리는 나를 돌아보며,
힘들지만 행복했던 이 기억들이 사라지기 전에 부지런히 여행기를 남기려 합니다.
1일차 23년 3년 2월 23일
새벽 3~4시에 기상해서 공항으로 향했다.
코로나 이후 몇 년 만에 처음 나가는 해외여행이라 준비할 것도 많고 정신이 없었다.
당시에는 예방접종까지 완료해야 외국에 나갈 수 있었던 시기.
긴장 반, 설렘 반으로 하네다에 도착했지만, 그 이후가 진짜 시작이었다.
공항에서 열차를 타고 도쿄 시내를 지나, 다시 몇 번이나 갈아타며 가마쿠라로 향했다.
아이 때문에 조금 돌아가는 길이라도 기차를 더 탈 수 있는 루트를 선택했는데,
가다가 반대방향으로 잘못 타서 다시 돌아가는 바람에 한참을 열차 안에만 있었던 기억도 있다.
지루하고 피곤하고, "내가 왜 이 여행을 시작했을까" 싶었던 순간들이 반복됐다.
오후쯤 에노시마에 도착했을 땐 이미 기진맥진 상태였다.
기차 1일권을 또 사서 엔노덴을 타고 돌아다니자고 했을 땐 솔직히 화가 났다.
하지만 창밖의 뷰를 보고 마음이 조금 플렸다
남편은 분명 일본은 한국보다 안 춥다고 했는데, 바닷가는 생각보다 훨씬 더 춥고 바람이 거셌다.
그 와중에 아이는 바다를 보자마자 신이 나서 뛰어들었고, 옷이 다 젖어버렸다. 다시 나의 분노가 올라왔다ㅋㅋ
힘들고, 지치고, 왜 왔나 싶을 만큼 사람도 많고 정신도 없었던 하루.
숙소로 돌아갈 때까지 아들은 에노시마 기차역 근처 건널목에서 떠나질 못했다.
기차가 건널목을 지나고, 철길과 바닷가 앞을 오가고, 다시 도시를 향해 달리는 풍경이
아이에겐 너무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몇 시간을 그 앞에서 기차만 바라보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겼는데,
아들은 다음엔 아무도 없는 아침이나 밤의 그곳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너무 힘들어서 기억이 흐릿했지만,
아이의 말 한마디에 결국 ‘다시 와야겠다’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그리고 정말, 바로 다음 달에 다시 오게 되었다.)
숙소로 돌아가기전 도쿄역 지하 캐릭터 스트릿트에서 프라레일 샵에 방문했다. 프라레일으 모든게 있는 꿈의샵 이었다.
2일차 23년2월 24일
이날의 목적지는 오미야에 있는 도쿄 철도 박물관.
오픈런을 감행한 가장 큰 이유는, 박물관 내에서만 판매하는 기차 도시락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신칸센 도시락통은 인기 품목이라
늦게 가면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모델이 없을까 봐
오픈 시간에 맞춰 서둘러 박물관에 도착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오미야 처도박물관에 가는 패키지 표도 같이 있는걸로 안다.
우리는 아이가 기차 안에서 있는것도 좋아했기에 일반 열차를 타고 갔지만 어린 아이가 있는 가족들은
신칸센을 경험할겸 타고 가는걸 추천한다.)
박물관에 도착하자마자 바로 도시락부터 구매했다.
기차 도시락을 다 먹으면, 그 도시락통은 우리가 가져갈 수 있었고
아이는 그 도시락을 무슨 보물처럼 들고 다녔다.
입구를 지나자마자 마주한 건 말도 안 되는 스케일의 전시관.처음 들어가서 보면 끝이 없어보인다. 실내에 이렇게 많은 여러대의 기차가 있으니까 너무 신기했다.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압도적인 규모의 철도 박물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나중에 교토 철도 박물관이 더 크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내겐 이 도쿄 철도 박물관이 주는 첫 충격이 훨씬 컸다.
아이 역시 거의 환상의 나라에 들어온 듯,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여기서는 기차를 직접 운전해볼 수 있는 운전 시뮬레이터,
실제 철로 위를 도는 미니 기차 체험,
기차의 구조와 기술을 직접 보고 만져볼 수 있는 전시까지
정말 기차에 관한 모든 걸 ‘직접’ 해볼 수 있었다.
그리고 굿즈 샵.
나는 여기가 진짜 놀라웠다.
한국에서는 보기 어려운 기차 관련 학용품, 장난감, 스티커, 필통, 문구류까지
너무 예쁜 게 많아서 굿즈샵에서만 한 시간 넘게 있었다.
결국 가방 하나 분량의 기차 굿즈를 구입했고,
아이는 매번 새로운 걸 꺼내며 자랑하듯 보여줬다.
이날은 문 열자마자 들어가서, 문 닫을 때 나왔다.
정신없이 바쁘고 꽉 찬 하루였지만
적어도 이날만큼은 ‘기차를 위한 하루’로 충분히 행복했다.
3일차 23년 2월 25일
이날은 오다이바에서 팀랩 전시를 보기 위해 오픈런을 시도했다.(우리가족은 다 오픈런을 추구합니다.ㅋㅋ)
역 바로 앞에 있어서 찾아가기는 쉽다.
내가 갔을때는 겨울이었고 전시관 안에는 겉옷과 가방은 가지고 들어갈수없고
양말도 벗어야 했다. 사람들이 각자 사물함에 짐을 넣어야 한다고 미리 들었기 때문에
나와 아들은 입구가 가까워지자 미리 옷과 가방을 남편에게 주고 양말도 벗고 있었다.
입장하자마자 나는 뒷줄이었지만 사람들이 짐 넣는 사이에 빠르게 들어갈수 있었다.
그래서 누구도 없는 나만의 뷰를 즐기며 인생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남편은 밖에서 기다림ㅋㅋ)
팀랩은 정말 멋졌고, 색감과 움직임이 환상적이었다. 요즘은 이제 체험형 전시와 미디어 아트 전시가
많이 열리지만 아직 저때만 해도 많지 않던시절이라 너무나 황홀했다.
그저 ‘전시’를 보는 것 이상의 열정과 계획을 가지고 갔던 덕분에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전시를 보고 오다이바에 있는 모노레일을 타고 쇼핑몰로 향했다. 바로 도라에몽 굿즈샵 미래백화점에 가기 위해서이다.
모노레일 양 끝에는 이렇게 운전석처럼 앉을 수 있게 되어있다. 아들은 참 이자리를 좋아한다
아들이 어릴때부터 유일하게 본 만화가 도라에몽 이다. 한참 포켓몬의 대유행 속에서도 혼자 꿋꿋하게 도라에몽을 좋아했는데
이렇게 일본에 와서 굿즈샵에 오니 얼마나 행복해 하던지ㅎㅎ
그후 저녁에는 새로 지어진 시부야스카이에 가기 위해 이동을 했다.
남편은 그 날 날씨가 춥지 않다고 하며,
그 말을 믿고 우리는 시부야 스카이로 올라갔다.
야경을 보고 싶어서 갔지만, 바람이 너무 강하고 추워서
정말 몸이 날아갈 정도로 차가웠다.
그런데 이미 올라가버렸으니 내려갈 수도 없고,
우리는 그곳에서 어거지로 사진만 찍고 내려왔다.
표 값도 꽤 비쌌기 때문에, 사실 돈이 아까웠다.
그런데도 새로 생긴 명소라서 안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지금도 그날의 기억이 끔찍하게 남아있닼ㅋㅋ)
저녁을 먹으러 돌아다니던 중,
모든 식당에 2시간 이상 대기 시간이 있어서
도저히 기다릴 자신이 없었다.
결국 쇼핑몰을 빠져나와 아무 식당이나 찾으려고 했지만,
도쿄의 저녁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이었다.
모든 식당이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고,
그렇게 배고프고 추운 상태로 돌아다녔다.
그리고 그 길에서, 아이도 힘들어하며 울기 시작했다.
너무 지쳐서 교차로에서 주저앉아 울었다.
그때 나도 울고 싶었다.
배고프고 추운 그 순간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은 아이를 업으며 계속해서 길을 찾아갔다.
그렇게 간 곳은 엄청 좁은 포장마차 같은 이자카야였다.
라면과 만두를 시켜서 ‘눈물의 만두’를 먹으며
겨우 저녁을 해결했다. 그 순간의 눈물 섞인 만두는
지금도 생각하면 정말 기억에 남는 저녁이었다.
4일차 23년2월 26일
이 날은 아침 비행기라 바로 귀국했다.
몇 년 만에 해외여행을 갔고, 도시 여행은 아이가 어릴 때 가던 휴양지 여행과는 다른 느낌이었기에 걱정이 많았다.
하지만, 8살 아이는 그 걱정을 모두 씻어주었다.
아이 스스로 자기 캐리어는 자기가 끈다며,
짐도 본인이 들고 잘 따라와 주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아들이 많이 컸다는 걸 실감했다.
그렇게 큰 캐리어를 끌어주겠다고 낑낑대며
아이의 마음이 얼마나 예쁜지,
그 사랑스러움이 정말 가슴이 벅차도록 느껴졌다.
이 여행은 힘들고 힘든 순간도 많았지만,
그 속에서도 아이의 성장과 가족의 추억을 가득 담은 특별한 시간이었고,
그 모든 기억은 마음 속 깊이 간직할 만한 값진 경험이 되었다.